박지성(朴智星, 1981년 3월 30일 ~ )[2]은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로, 현역 시절 포지션은 윙어, 미드필더였다.
현역 시절에는 트로피 19개를 획득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한 최초의 아시아 축구 선수이자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 최초의 아시아인 선수이다. 그는 뛰어난 체력과 훈련, 프로 의식으로 유명했으며, 그의 지구력으로 인해 "폐 3개 가진 박(Three-Lungs Park)"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한 그는 명지대학교 축구부에서 활동했으며, 200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퍼플 상가에서 활동하며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그 후 2003년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가 네덜란드로 돌아와 감독을 맡은 팀인 네덜란드의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하여 유럽 리그로 진출을 했다. PSV가 2004-05년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 진출한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감독 알렉스 퍼거슨에게 인정을 받아 2005년 7월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계약을 맺었다.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4번 우승했으며, 2007-08년 UEFA 챔피언스리그, 2008년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이후 주전 출전 횟수가 감소하자 2012년 7월 퀸스 파크 레인저스 FC로 이적했다. 그러나 이적 시즌에 자신의 부상과 소속팀의 강등으로 인해 2013-14 시즌에 임대 형식으로 PSV 에인트호번에 합류했다. 이후 2014년에 PSV에서의 활동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도 활동하여 A매치 100경기에 출전하여 13골을 넣었다. 그는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4위를 차지한 대한민국팀의 일원이었으며, 2006년 FIFA 월드컵과 2010년 FIFA 월드컵에서도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고 2011년 AFC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그는 월드컵에서 맨 오브더 매치(팬투표)에 3회 선정되었으며, 손흥민, 안정환과 함께 3골(14경기)로 한국 선수 월드컵 최다 득점자이다. 현재는 국제축구평의회 자문위원, 전북 현대 모터스 테크니컬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어린 시절
박지성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에 정착한 박성종과 장명자 사이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이후 아버지 박성종의 사정으로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신안리 775번지에서 성장했으며, 점암면의 신안초등학교(현 점암초등학교)를 다니다가 2학년 때 수원으로 이사를 갔다. 산남초등학교 3학년 때 해당 학교의 축구부에 들어갔으나, 축구부가 해체되어 세류초등학교로 전학을 갔고 4학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3] 6학년 때는 전국 대회에서 세류초등학교가 준우승을 차지해 차범근 축구상 장려상을 수상했다. 안용중학교, 수원공업고등학교를 거친 그는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에 눈에 띄어 명지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키가 작고 왜소해 수원공고 1학년 시절에는 기본 훈련만 시켰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몸에 좋다는 보약을 마시게 한 후 박지성은 7cm나 컸다고 한다. 박지성은 1년동안 혼자 축구를 했다.
구단 경력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으나 한국 축구에서는 완전히 무명 선수에서 박 자신도 "고교 시절은 K리그의 드래프트에 뽑히지 않았습니다"고 회상하고 있다. 드래프트에 뽑히지 않은 이유로 당시의 지도자는 몸의 작음을 꼽았다. 그러나 1999년 1월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의 눈에 띄어 특기생으로 입학할 예정이던 명지대의 축구부의 합숙에 조기 합류하면서 그때 열린 한국 올림픽 대표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이후 U-23한국 대표에 뽑히게 된다. 2000년 4월 5일은 AFC아시안 컵 예선 라오스전에서 A대표 데뷔도 했다.
또한 히딩크호 엔트리 23명 중 차두리와 더불어 K리그 경력이 없는 2명뿐인 선수였다. 이후 차두리는 K리그에 입성하나 박지성은 은퇴 시까지 K리그에 소속되지 않아 히딩크호 유일의 비K리거로 남아 있다.